가파른 경사면에 자리잡은 사파 마을. 뚜벅이 여행자인 윗니와 나에게 날개를 달아 줄 오토바이를 렌트하기로 한다. 마을을 둘러보면 저렴하고 컨디션이 좋은 오토바이를 빌려주는 렌탈샵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시간이 많이 없고 오토바이를 반납할시 편의성을 고려해서 우리 숙소에서 스쿠터를 렌트하기로 했다. 하루 렌트와 반나절 렌트의 비용이 같다는 직원에게 미소와 애교를 날리며 흥정을 시도했지만 산 마을의 사람답게 기가 쎄다. 결국 눈치싸움에서 처절히 패배하고 꼬리를 내린다.

길 컨디션이 그리 좋지않은 산악마을인지라 타이어 압력이 60~70% 정도로 맞추어져 있고, 한낮 스쿠터지만 그립감이 좋은 산악용 타이어가 탑제되어 있다. 1박2일동안 빡세게 돌아다닐걸 대비해 스쿠터의 상태를 체크하고 주유를 하러 주유소로 향했다.



줄도 없고 질서도 없는 주유소에서 순번을 몇번이나 빼앗기며 기다려야했다. 갈 길이 먼데 자꾸만 비집고 들어오는 로컬 청년들의 철면피에 질세라 윗니는 저만치에 세워두고 나도 그 치열한 대열에 합류했다.



결국 주유에 성공(?)하고 바이저 대신해 눈을 보호해 줄 선글라스를 장착하고 (산악지형이라 먼지도 많고 벌레도 많았다) 출발을 외쳐본다.



소수민족 마을은 내일 둘러볼것을 약속하고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산동네의 오르막길을 따라 인도차이나 반도의 지붕이라는 판시판을 향해 달려본다.



마을 끝자락에 열린 야시장에 눈길이 끌려 잠시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둘러보기로 한다.





질서없이 세워진 천막들이 도깨비시장을 연상케한다.



한국처럼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시장을 기대했건만, 소수민족들이 필요로하는 생필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야시장이라 그런지 그닥 흥미롭지 않았다. 



키작은 소수민족 여인들이 자신의 몸집만한 장바구니를 메고 장사꾼과 입씨름을 벌이는 광경외엔...



기름을 만땅 채운 스쿠터는 질주 본능을 일으켰고, 내 허리춤을 잡은 윗니는 겁에질린 비명과 환호가 반반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30분채 달리지 않아 판시판 곤돌라 타는곳에 도착.


최대의 관광지라며 별점을 아끼지 않던 가이드북의 입발림과는 달리 주차장엔 먼산을 바라보며 멍을 겁나 열심히 때리고 있는 주차요원만 덩그러니 있을뿐, 관광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기오염이 심한건지, 아니면 산의 변덕스러운 기온이 증발과 응축의 번복을 돋구어 안개 비스무리한걸 산자락에 입혀놓은건지... 그닥 총명하지 않은 하늘에 거대한 몸집을 숨긴 판시판산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쉬워 했다. 안내 푯말을 따라 곤돌라 매표소로 향해본다. 그리고 가격표 앞에서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발걸음을 180도 돌아 건물을 빠져나왔다. 성인 1인 왕복이 60만동이라는 말에 곤돌라는 빠르게 포기.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 윗니와 나에게 120만동이면 6일치 방값이라는 큰 부담이었다.



주차장에서 아쉬운 인증샷만 남기고 근처에 있다는 은폭포(silver fall)로 향하기로 한다.




해가 산자락의 뒷통수를 향해 뉘엇뉘엇 넘어가며 빛을 발한다. 절제된 햇빛을 라이팅 삼아 윗니의 프로필사진을 몇장 찍어보기로 한다. 인물과 배경을 함께넣는 구도를 잡다보면 과한 노출에 배경이 가리거나, 반대로 과한 욕심에 인물이 뒷전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모든게 그렇듯 어느 하나에 치우치면 결과물이 불화합을 나타낸다. 삶도, 여행도, 그리고 연애도 그렇다.

윗니와의 시간이 계속되면서 난 매번 그녀에게 말한다,

"너무 내 길만 걷는거 같아 미안할 때가 있어. 너 자신이 원하는걸 포기하고 나에게 모든걸 맞추면 너도 모르게 나중에 불만이 쌓여서 너가 갈림길을 택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것 같아. 윗니야 너가 원하는게 있으면 항상 주저하지 말고 말해줘. 우리의 이 여행이 우리가 약손한 미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타협과 배려가 동등한 시간이 되었으면 해."

 그러면 매번 윗니는 같은 사과를 한다,

"아니야 밤비야. 내 우유부단함이 너를 항상 힘들게 하는거 같아 난 그냥 내 의견을 내지않고 너가 가는길에 함께하는게 좋아."


주관이 뚜렷해 욕심이 많은 나와 우유부단한 윗니의 만남은 어떻게 보면 천생연분이겠지만, 서로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이런 갈 길 잃은 미안함과 오해로 갈등이아닌 갈등을 빚어낸다. (물론, 제 3자의 입장에선 이 모든것이 행복한 고민으로 비춰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시간이겠거늘, 따지고보면 지금 이 순간도 그녀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이다. 윗니는 이번 9박10일의 일정을 모두 내게 맡겼더랬다. 여행계획 시간이 촉박하다는걸 핑계로 내 마음대로 짜여진 일정을 윗니는 하나의 불평없이 다 동의해 주었다. 2011년도에 친구와 함께 했던 인도여행에서의 불행스러운 일 이후로, 누군가와의 배낭여행을 끔직히도 싫어했던 나에겐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지만 나만큼 많이 해외여행을 다녀 본 윗니도 분명 자신히 추구하는 방식이 여행이 있겠거늘... 그녀는 너무... 착하다.


도전에 대한 의식이 가끔 무모한 도전이 되는 내 일정을 윗니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잘 견뎌주고 있다. 그래서! 난 그녀에게 조금 더 무모한 도전을 제시하기로 한다.




은폭포 근방에 있는 노점상에 앉아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한다. 간단한 인사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주머니와 대신 이를 들어내며 미소로 인사를 나누고 손가락으로 이것저것을 가리키며 정체불명의 음식들을 주문해 본다. 오리알 같은거 하나, 돼지고기 같은거 두개, 새 한마리.



"극혐!! 극혐!!!!" 을 외치지만 미소를 짓고있는 윗니.




검게 그을린 손으로 따라주신 차 한잔에 시렸던 손과 마음을 녹여본다.



바삐 부채질하는 아주머니는 카메라를 올려다볼 여유도 없지만 눈을 마주칠때면 때묻지 않은 미소를 지어주셨다.





돼지고기 꼬치는 한국에서 먹어봤을법한 맛이었고 오리알은, 오리알 같은 맛이다. 기대했던 새 구이는 생각보다 비린내가 없고, 또 생각보다 특별한 맛은 아니다. 맛있다며 건네준 새 구이를 쥐똥만큼 뜯어먹고선 인상을 쓰는 윗니. "맛있지?" 하고 물어보는 내게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윗니. 어디가서 이 귀한걸 먹어보겠냐며 뼈를 발라먹는 나를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라보는 윗니.



무한리필을 자랑하던 아주머니의 인심이 가득담긴 차가 너무나 맛있다. 자스민 처럼 달달하지만 쓴맛이 전혀 없어 벌컥벌컥 마셔도 목넘김이 좋다. 차의 이름이궁금해 아주머니에게 여쭤보니 "사파 차"라고한다. 작은봉지가 2만동이길래 바로 구매.




잘먹었다는 말대신 미소로 다시한번 인사를 나누고 상점 길 건너에있는 은폭포를 구경하기로 한다. 길 옆에 세워진 사진으로 보아하니 우기때는 웅장한 모습인지 모르겠으나 근래에 한참 비가 없었는지 캐나다에서 흔히보던 뒷동네 폭포만도 못하다.


입장료까지 있는걸 보아하니 단체관광 코스가 아닌가싶다. 굳이 입장료를 내고 구경해야 되나싶어 매표소 아저씨의 쌀쌀맞은 눈길을 피하며 길 건너에서 인증사진 몇개만 찍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해가 산 능선 뒤로 넘어가고 뼈까지 시린 산기운이 가득한 길을 달려본다. 마을에 가까워 질수록 어둠이 산자락 깊숙히 눌러 앉았고, 아지랭이 피며 하나 둘 피어 오르는 산골 마을의 불빛이 하늘의 별빛과 인사를 나눈다. 서둘러서 숙소로 돌아가야한다는 마음은 가로등 하나 없는 비포장 도로 어딘가에서 잊어버렸다. 어릴적 과학키트로 만든 손전등의 밝기만도 못한 오토바이의 낡은 헤드라이트에 의지한채 느림보 걸음으로 별이내린 사파마을을 향해 달려본다.


저녁 야시장이 열린다길래 기대를 가득 품고 갔는데, 역시나 허접하다. 결국 낮에 미리 알아두었던 쌀국수 맛집으로 향한다. 찬바람을 쐬며 달렸던지라 온몸이 꽁꽁 얼어있었더랬다, 쌀국수의 비쥬얼은 가히 아름다웠다.  


고수를 잘 먹지 못하지만 자꾸만 도전해서 언젠가 좋아할 수 있게되길 바란다는 윗니. 



사파의 핫 플레이스 답게 백인도 보이고 무엇보다 로컬이 많아 보였다. 주문했던 쌀국수와 물소 불고기를 올 클리어 하고 아쉬운 마음에 오토바이를 몰고 야경을 구경해보기로 한다. 해가 가득했던 산자락 마을 사파의 거리에는 밤의 기운만 덩그러니 남겨져있을뿐, 상인들과 여행객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처없이 밤길을 달리다 마을 중심부에있는 사파 성당을 잠시 구경하고 마트에 들려 필요한 생필품을 구매했다. 이것저것 살게 많지만 배낭여행이라 많이 사면 다 짐이다. 마트에서 고민과 고뇌의 시간을 보낸 윗니는 당이 떨어졌다며 디저트를 찾는다.



낮에 길을 잃었을때 도움을 받았던 카페가 생각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리기로 한다.




두개만 고르라는 내 말에 한참을 고민하는 윗니. 결국 초코초코한 녀석들로만 골라낸다. 결국 너무 달다며 몇입 못먹었지만 오늘 하루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킨것 같아 뿌듯하다. 멋,맛, 그리고 미(인)가 가득한 사파의 하루는 시간이 야속할 정도로 재빠르게 지나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티스토리 친구하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