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깟바로 향한 험난한 여정: 눈뜨고 코베인 사건 |9박10일간 베트남 배낭여행 |베트남|깟바



틈이 벌어진 창, 손 한뼘만한 작은 구멍으로 하노이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도시의 정글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하노이만의 소리. 비록 사람과 기계음이 질서없이 뒤섞인 소리지만, 레코드의 잡음처럼 감성이 묻어난다. 잠귀가 밝은 윗니도 잠이 달아났는지, 침대위에 가만히 누워 귀를 쫑긋 세운채 아침의 속삭임에 귀를 귀울이고 있었다. 아직 내것이 되지 않은 낯선 장소의 소리가 모여 감정의 선율을 이루고, 이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그 두드림을 밝게 맞이해본다.



씻겠다는 윗니를 두고 혼자 하노이의 거리로 나섰다. 매번 저녁 시간에만 돌아다녔던 하노이의 거리, 머리속에 흑백으로 그려넣었던 도시를 드디어 색이 입혀진 모습으로 마주해본다. 생각보다 훨씬 더 밝고, 더 역동적인 거리의 자태에 압도되어 잠시 주춤거리다, 한 손에 쥐어져있던 카메라를 무기삼아 거리를 헤메어 보기로 한다.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오토바이가 허벅지를 스쳐가고, 유모차 바퀴에 발이 밟혀도 피할틈이 없는 비좁은 골목길.몸을 잔뜩 움츠린채 조심스런 발걸음을 계속해본다.




새벽 7시,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길가엔 주부와 장사꾼의 흥정은 한껏 달아올라 있었고





죽가게 아주머니는 동녘부터 준비한 펄펄 끓는 죽을 담아내느라 손이 바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목욕탕 의자에 앉아 뜨거운 죽을 입에 욱여넣고 있다.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무료 조식만 아니였다면 나도 그들 사이에서 한그릇 하고 싶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으로 그 온기를 담아본다.



그저 기념품인 줄 알았던 "농"모자는 베트남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농의 그늘에 얼굴을 숨긴 이들을 지나칠때마다 왠지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끌린다. 하찮은 사물이 가질수있는 이국의 향기랄까?  베트남을 떠날때 내 배낭 안에도 하나 들어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도 외국인의 시점에서 이색적인 모습이 많거늘... 한복같이 눈에담기, 그리고 사진에 담기 아름다운 전통이 보편화 되어있지 않다는게 안타깝다. 이른 아침에만 볼 수 있는 하노이의 모습에 자꾸 발목이 잡혀 목적지를 잊어버릴 뻔 했다.

오늘 깟바로 이동하는 일정을 위해 교통편을 알아봐야한다. 가이드북에서 추천한바로는 버스와 보트표가 통합된 컴포짓(composite) 티켓이 가장 저렴하단다. 정보는 정확했지만, 문제는 거품이 없는 여행사를 찾는 일. 첫날에 찾다가 미아될뻔한 "신카페"를 다시 찾기엔 의욕이 부족하다. 큰 길가에 있는 수십개의 여행사 중 문이 연 곳을 무작위로 들어가 가격을 알아보기로한다.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앞집도, 옆집도, 그 옆집에도 뻥튀기가 심하다. 편도로 24만동이라는 티켓을 미국 달러로 17을 부르며 저렴한 가격이라 혀를 내두르는 직원들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이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단호했다. 다음에 오겠다는 날 붙잡지도 않는 걸 보니, 한국인들이 꽤나 속아주었나보다. 인도에서 50원 때문에 릭샤 기사와 주먹다짐을 했던 나에겐 어림 반푼도 없다!

여행 떠나기전, 이번 여행은 항공티켓을 포함해 둘이서 여행 경비를 딱 100만원만 사용하기로 약속했기에... 발품은 한 걸음 더 내딛을때마다 천원을 더 아낄 수 있다는 (내가 만든) 명언이 있더랬다. 그렇게 굳은 다짐을 하며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문득 든 생각. 여행사는 다 다르지만, Hoang Long이라는 버스회사의 표를 판매하는것이니 버스회사를 직접 찾아가면 표를 정가에 구입할 수 있겠다!


기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빠른걸음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도착해 (내가 늦어) 이미 나갈채비를 다 마치고 와이파이 타임을 가지고 있던 윗니에게 장황하게 설명을 해 본다. 저렴한건 무조건 좋다는 윗니. 인터넷으로 버스회사 사무실을 검색해 보니 거리가 좀 있다. 아침먹고 소화도 할겸 도보로 이동하기로 한다.



아침을 대충 먹거나 건너뛰는 나와는 달리, 뱃심에서 원동력을 얻는 윗니가 기대했던 조식. 심사숙고하여 고른 이 숙소의 조식은 인터넷 평처럼 플레이팅마저 완벽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전 날에 한번 더 오자는 윗니에게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본다.



카미노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던 짐들이 없어 배낭이 쭈글이가 되었다. 볼품이 영 없지만, 두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가 그리웠던 윗니와 난 이번 여행에도 캐리어 대신 배낭을 선택했다.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부딪혀 보자는 의지로 빈 무게를 채워본다.



여행자 거리인 호안끼엠 지역을 벗어나니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오토바이가 거리와 도보를 장악하고 있었다. 교통법 따위는 없어 보이는 무질서한 베트남의 도로. 그래도 여행자로선 이해할 수 없는 철학이 있는지 놀랍게도 베트남에 있는내내 접촉사고를 한번도 보지못했다. 




호앙 롱 버스회사 사옥에 들어서니 물품창고를 연상케 할 만큼 난잡한 사무실이 나타났다. 카운터를 넘나들며 업무에 열중하는 직원. 바쁜와중에도 잠시만 기다리라는 뜻인지 검지를 치켜세워보인다. 카운터에 삐딱하게 기대어 그를 기다려본다. 티케팅과 물류일을 혼자서 다 하는건지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더니 한참 후에 카운터로 돌아왔다.

자신이 영알못이라는 걸 어필하려는건지 보란듯이 베트남어로 말을 걸어온다. 알아들을리 없지만 영어로 깟바를 가려니 컴포짓 티켓을 끊어달라 말하자 내 입모양만 살피고 있던 직원은 핵심단어는 캐치했는지 고개를 연신 끄덕여댄다. 손목시계를 들여다 본 직원은 벽에 걸려있는 큰 시계로 시간을 다시한번 체크하더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안좋은 낌새를 차린 윗니와 나. 서로만 멀뚱히 바라보았다. 컴퓨터에 무언가를 입력해 보더니 갑자기 "오케이 오케이"를 외치는 직원. 수화기를 귀에 걸더니 수화기 넘어의 누군가와 폭풍대화를 나누다 다시한번 컴퓨터 화면과 손목시계를 연신 확인하더니 다시한번 "오케이 오케이"를 외친다. 씨익 웃어보이는 직원의 미소에서 일이 잘 풀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노트패드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더니 자랑하듯 카운터 위에 내민다. 55만동이 적혀있다. 1인당 24만동인것을 고려하면 7만동이 부가된 가격이었다. 질문을 할 틈도 없이 시계를 가리키는 직원. 발품의 결실이 이렇게 맺어지다니...

눈물을 머금고 제시한 금액을 지불하고 직원의 뒤를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도로변에서 멈춰선 직원은 기다리라는 시늉을 해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용차 한대가 발치앞에 세워졌고 운전사는 우리의 짐을 트렁크에 싣더니 차에 어서 타라는 시늉을 한다. 잘가라며 손을 흔들어주는 직원에게 씁슬한 미소를 보내고 윗니와 함께 도착지도 모른채 어딘가로 실려갔다.

도심을 가로지르던 승용차는 한참을 달려서야 고속도로로 진입했고 5분간 더 달리더니 고가도로 아래에 멈춰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크고작은 공장들만 보인다. 운전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짐을 길가에 내려놓고선 길 건너편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어리둥절해 하는 윗니와 나에게 두어번 더 길 건너편을 가리키더니 그는 유유히 사라졌다.



길을 건너본다. 버스 정류장이겠지 했던 건물은 다행이도 버스 정류장이었다. 순간 모든 의문점이 풀렸다. 도시안에 있는 버스 정류장은 버스회사 사옥과 다른 위치에 있었고, 우린 깟바로 향하는 버스의 막차를 이미 놓쳐버린 것이었다. 직원은 택시가 아닌 지인(아마도 친구)의 차를 고용해 우리가 도시 외곽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깟바행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것이었다.


하마터면 깟바와 하롱베이 일정을 한번에 날릴뻔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버스에 몸을 싣는다. 긴장이 풀린다. 더 큰 시련이 올 것을 예상하지 못한채 윗니와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두시간을 열심히 달리던 버스는 하이퐁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우릴 떨어트렸고, 버스 기사의 지시를 따라 버스 터미널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사무업을 보고 있던 여직원은 우리의 등장에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어디 가냐고 물어오는 직원. 깟바에 간다고 하니, 오늘은 안된단다. 오늘은 위기가 참 많구나...

순간 온순해 보이던 백인 여행객 두명이 직원에게 항의하기 시작. 그 대열에 끼어 나도 언성을 높여본다. 직원은 여기저기에 전화를 하더니 제의를 해 온다. 10만동을 내면 배를 탈 수 있단다. 백인 여행객들은 티케팅을 하노이에서 묵었던 호텔에서 했다며, 호텔에 전화를 걸어 환불을 받아낸다. 반면에 어디가서 아야 소리도 못하는 윗니와 난 다시한번 눈물을 머금고 요금을 지불하기로 한다. 하지만,



부둣가에 차를 세운 택시기사는 10만동을 더 요구한다. 차 두대가 움직였으니 한대당 10만동을 받겠단다. 깟바까지 24만동인걸 고려하면 10만동을 받겠다는건 다음에 다시 만나면 내손에 하노이의 음침한 뒷골목에 끌려가서 강냉이가 이빠이 털려도 할 말 없을 말도 안되는 요구였다. 분노게이지가 한계를 넘는다. 윗니와 하는 여행동안엔 간디와 부처의 마인드로 이런 위기를 대처하겠던 다짐을 잊고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벌인다. 10만동은 버스회사한테 가서 받으라는 내 말에 보트에 오르지 못하게 길을 막는 택시 기사. 꽁안 (경찰)을 부르겠다는 내 으름장에도 내 팔뚝만한 가녀린 몸으로 어떻게든 앞길을 막으려 한다. 불난집에 부채질을 하려는지, 보트에서 내린 선원들이 조롱을 해댄다. 도와줄 생각도 없는지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버리고 간다는 말과함께 웃어댄다. 심호흡을 크게한번하고 택시기사에게 돈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같은 한 패 였던 직원들의 얼굴도 사진으로 찍어놓고 하노이에 돌아가면 꽁안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혼자만의 여행이었더라면, 시간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난 분명 쉽게 넘어가지 않았을거다. 인도, 똥남아, 유럽에서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은 난 한번도 물러선적이 없었다. 난 내 배낭여행의 철칙을 지키고 싶다. 비록 프랑스에선 현지 경찰과 캐나다 영사관까지 합류된 사건을 남겼지만...



보트 안에 들어서니, 선내를 가득 채운 백인 승객들이 토끼눈이 되어 우릴 주시한다.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며 보트 선원들과 말싸움을 하는 내가 신기했겠지. 같은 역경을 겪었던 백인 여행객들은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넌 대단한 싸움꾼이야"라는 말을 건네온다.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은채 복수의 칼날을 간다. 하노이에서 꼭 복수 하리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거라 생각했는지, 보트안에서도 그리고 보트에서 내려 마을까지 버스로 이동할때도 윗니는 그저 내 옆을 지켜줬다.




깟바섬에 도착해 마을로 이동하는 버스안에서도 마음이 복잡했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호구가 된 채 상한 마음으로 여행을 했을지 상상을 하니 치가 떨린다. 여행객 개개인이 이러한 상황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관광지에 흔히 존재하는 적폐를 처단하지 못한채 이 썩어빠진 굴레를 벗어나지 못 할 것이다. 비록 일개 여행객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건 많이 없지만, 할수 있는건 뭐든지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그리고 또다른 의문점이 든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상인들은 왜 자신들이 하는 짓이 장기적으로 보면 해가 된다는 걸 모를까. 여행자의 바지춤에서 훔쳐간 5천원, 만원으로 얼마나 큰 부와 명예를 누릴려고 그럴까.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잊지못할 사건 덕분에 인연을 얻었지만, 윗니와 내가 보트에 타지 못하고 있을때 자신들만 줄행랑 쳐버린 외국인들이 괘씸하다. 그래도 즐거운 여행이 되라며 작별인사를 건네었다. 생각해보면, 이 백인 여행객들이 베트남을 여행하는동안 당할 불미스러운 일들은 동양인이 나보단 훨씬 더 많겠다. 백인국에 가면 동양인들이 차별받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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