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순항! 란하베이&하롱베이 데이투어 |9박10일간 베트남 배낭여행|베트남|하롱베이



오늘 사실 데이투어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 다른 관광객들과 줄지어 포토스팟만 찾아다니는 뻔한 형식의 투어일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쿨내 진동하는 린 아저씨의 자율적인 투어는 그런 내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린 아저씨의 '방생'형 투어는 한국인들보단 백인 친구들에게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서비스와 안전을 고집하는 여행객들에겐 맞지 않는 투어 포맷이었다.

만약에 카약을 타지 못했더라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울상을 짓고 있겠고, 헬멧이나 구명조끼 하나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안전성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며, 별다른 설명이나 지도 없이 자율적으로 관람하고 이동해야 했기에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일반 여행객에겐 불만을 일으킬 여지가 너무 많았지만, 윗니와 나 같은 예외도 있다. 방생을 너무나 사랑하고, 위험한 것과 모험을 즐기는 우리같이.


카약 투어를 마치고 배로 돌아오니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노를 얼마나 열심히 저었는지 땀에 흥건히 젖어있던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다. 12월인데도 물 온도가 그렇게 차지 않다. 오히려 더위를 식혀주기에 알맞다.

자신도 도전해보겠다며 물에 뛰어드는 윗니. 잠깐 물장구를 치더니 이내 비명을 지른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곧장 다가가서 구출해 주었다. 목을 와락 끌어안는 윗니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하고 배까지 천천히 수영하였다, 물에 빠진 사람이 발버둥 칠 때 섣불리 다가가서 구출하려다 구출자도 물에 같이 끌려 들어가 익사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 갑판 위에 주저앉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 본다. 자신의 수영 실력을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윗니. 바다 수영이 위험한 이유는 수영장에선 수영을 곧잘 하던 사람들이 바다에선 바닥이 없다는 두려움을 느껴 사고가 나기 때문이라며, 나무라듯 일러주었다. 카르스트 지형상 배가 정박하는 섬 근처라도 수심이 50미터가 넘기에,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곧 점심이 준비될거란 말에 다시 웃음을 찾았다. 아침에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챙겨먹지 못했기에,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배의 뒷 부분에 있는 쪽방에 마련된 작은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몰래 훔쳐보니 배의 선원 중 나이가 제일 어려 보이는 친구가 능숙한 솜씨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작은 주방에서 나온 음식들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맛있는 점심이 테이블마다 서빙되었다. 비주얼도 그렇지만, 일단 맛이 훌륭하다. 보통 이렇게 큰 단체를 위해 조리할 때 큰 냄비에 하기 때문에 음식이 눌어붙어 조금 타는 경우가 있는데, 서빙된 모든 요리가 완벽 그 자체였다.

소식을 하는건지,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백인 친구들은 금방 수저를 내려 놓는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눈빛을 주고받은 윗니와 난 밥을 제외한 모든 음식을 올 클리어 하였다. 가소롭다. 6인분 따위는.

테이블을 끝까지 지키며 모든 음식을 먹어치우느라 식사 후 주어진 한시간의 자유시간이 30분으로 단축되었다. 채워진 칼로리를 태워보자는 의지로 곧장 카약을 타고 주변 섬을 셀프 투어 하기로 한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배는 하롱베이 쪽으로 이동하여 해변이 있는 카르스트 섬 부근에 정박해 있었다. 덕분에 카약에서 내려 잠깐 육지를 밟아 본다. 석회암이 쌓여 생긴 해변인지, 모래 결정체가 밀가루보다 곱다. 마치 밀가루 반죽을 만지는 것처럼,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모래의 촉감이 너무나 부드러워 신기했다.




평수로 따지면 10평도 안 되는 작은 해변이라 귀엽기까지 하다. 아마 이런 곳도 조금 더 개발되면 카페나 술 파는 바가 들어서겠지...



잠시 둘만의 시간을 가질까 했지만, 식사를 먼저 마친 백인 친구들이 이미 섬을 정복한 후였다. 우리만의 섬을 찾아보자며 다시금 카약에 올랐다.

시간의 제약이 있다는 것도 잊고 우리만의 해변을 찾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 본다. 기분이 좋은지 흥얼거리는 윗니. 그리고 죽어라 노를 젓는 나. 영화에서 연인들이 뱃놀이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곤 하는데, 남주들은 분명 다음날 몸져누웠을 거란 확신이 든다.



배로 집합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와서 찾는 걸 포기하고 배로 돌아가려는 찰나, 카약으로 옴겨 탔던 배의 반대편으로 1평 남짓한 작은 해변이 있었다. 정말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설정샷과 허세샷을 남기고 배로 돌아갔다. 하롱베이에서 넘어온 것인지, 타 여행사 보트들이 언제 온 건지 우리 배 근처에 정박해 있었다. 비슷한 모습의 배가 많아 잠깐 헷갈릴 뻔했지만, 갑판 위에서 손을 흔들며 이를 드러내 보이는 린 아저씨 덕분에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배로 돌아가는 길에 굉장히 독특한 광경을 보았다. 아주 낡아 보이는 나무 나룻배 위에서 손으론 낚싯대를 바삐 놀리면서, 양발로 노를 젓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나타났다. 이 모든 걸 능숙하게 해내면서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들. 여유롭게 놀이 하는 우리 모습이 보기 좋았나 보다.



배로 돌아가자 다시 한번 뱃고동과 함께 조타의 핸들이 바삐 돌아간다. 다음 목적지는 몽키 아일랜드. 섬의 이름처럼 원숭이가 많은 곳이란다. 섬 본래의 네이티브 종이 아닌,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섬에 방생된 마카크 ( Macaque) 원숭이란다. 주로 일본에서 발견되는 종이라는데, 성격이 고약해서 관광객들을 공격하거나 무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섬 주변에 산호가 있는지, 하얀 백사장이 길게 뻗어 있다. 수심이 얕아 큰 배로는 접근할 수 없는지 해변까지 통통배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하루 만에 정말 다양한 종류의 배를 타본다. 배는 그래도 모터 달린 게 최고다. 



예상했던 것과 같이 해변이 산호 조각으로 뒤덮혀 있다. 이게 보기엔 이뻐 보이지만, 맨발로 물놀이를 했다간 레고 밟은것보다 100배 더 심한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오키나와에서 못 모르고 신발을 훌러덩 벗고 해변으로 뛰어 들었다가 테러를 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발바닥이 저려온다.



몽키 아일랜드는 거대한 석회암 암석이 무너져내리면서 지금의 길쭉한 모양을 가지게 된 모양이다. 섬 곳곳에 집채만 한 바위들이 위태롭게 쌓여져 있고 그 위로 생명력이 강한 풀과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뿌리가 깊게 내리지 못해 거미줄처럼 바위를 덮고 있는 모습이 앙코르 와트를 연상케 한다.




몽키 아일랜드가 오늘 데이투어의 마지막 관광지인 이유는 원숭이가 아닌, 석양 때문이다.



석양을 보기 위해선 섬의 가파른 돌산을 올라야 하는데, 개발된 휴양지가 아니라 그런지 조금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오르는 길이 험하다.




손발로 기어오르고, 크고 작은 협곡을 뛰어넘고, 비좁은 샛길을 지나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악인의 피가 흐르는 윗니와 난 좋다며 유난을 떨고 있는데, 오히려 백인 친구들은 무섭다며 잔뜩 움츠려있었다. 

린 아저씨는 조금만 더 가면 더 좋은 곳이 있다며 조금 위험하지만 가볼 의향이 있냐고 물어온다. 고민하기도 전에 아저씨가 출발을 외친다. 나와 아저씨 그리고 백인친구중 체구가 가장 작은 한명이 팀을 이루었다. 나머지 일행은 하산을 택했지만 윗니는 잠시 쉬면서 우리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겠단다.

바위의 끄트머리만 뾰족하게 솟아있어 발 디딜곳이 손 한 뼘도 안되는 구간을 껑충껑충 뛰어넘고, 날카로운 암벽을 가이드라인도 없이 맨손으로 등반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아저씨의 당근을 덥썩 물어버린 나와 백인친구는 목숨을 내놓고 아저씨를 뒤따랐다. 결국 섬의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절벽에 올랐다.



린 아저씨 말대로 엄청난 경관이 360도로 펼쳐져 있다. 내륙이 아닌 바다 위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평선을 수 놓은 수많은 카르스트 섬들. 높고 낮은 카르스트 섬의 실루엣이 마치 용의 굽어있는 몸처럼 보인다. 또, 유동적인 바다에 잠겨있어 움직이는 것같이 보였다. 왜 하롱베이가 용이 잠든 곳이라 불리우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감동도 잠시, 하산하는 길은 더 어렵다며 마음을 단디 먹으라는 린 아저씨의 말에 바삐 놀리던 카메라를 내려 놓았다. 자세를 낮추고 종아리에 힘을 이빠이 싣었다. 암벽 구간에선 서로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처음엔 손을 잡아주는것과, 엉덩이를 받쳐주며 서로를 부축하는게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우애가 느껴졌다.     



윗니가 있는 지점까지 무사히 하산을 마친 우린 서로에게 수고했다라는 말을 나누며 다시 어색한 사이로 돌아갔다. 어땠냐고 물어오는 윗니. 무리를 해서라도 같이 갔었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이든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시큰둥하게 답하였다, "여기나, 저 위나 비슷해."

해변으로 되돌아가는 길, 여행객들이 버리고간 물병들을 양손에 가득 주워 하산했다. 오는길에 보였던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더럽혀져 있다는게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이런 내 행동이 위선적이고 오지랖이라는 건 안다. 관광을 참여함으로써 결국은 나도 자연을 해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래도 사죄하는 마음으로 쓰레기를 주워담아본다. 



해변에 도착하자 석양은 바다를 금빛으로, 그리고 하얀 모래사장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원숭이 녀석이 가까이 다가온다. 애절한 눈빛으로 음식을 구걸하는데 가만보니 녀석도 금빛 옷을 입고 나왔다.





통통배를 타고 배로 돌아 온 후, 색이 변하는 바다를 감상하였다.




능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려는 해를 쫒던 배는 빛을 잃은 검은 바다를 소리없이 가로지르고 - 외로이 섬을 지키던 등대의 눈맞춤에 뱃고동을 울렸다.

항구에 정박한 후 배에서 내리기 전 린 아저씨와 힘이 실린 악수를 나누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감사한 마음을 다 전할 수 없지만, 오늘 하루 그의 열정과 세심한 배려에 큰 감동을 받았다.

깟바를 선택한 건 정말 신의 한수였다. 빡빡한 일정만 아니였다면 며칠동안 지내면서 섬 곳곳을 둘러봐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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