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육지의 하롱베이 닌빈으로! |9박10일간 베트남 배낭여행|베트남|깟바-닌빈


볼을 맞댄 채 잠들었던 바다와 하늘. 경계선 없이 파랗게 끌어안은 둘을 시샘하듯, 아침이 얼굴을 붉힌다. 형형색색 치장한 동녘이 바다와 하늘을 갈라 놓자 바다는 시퍼런 멍을 들어내며 뭍에 부서진다. 하지만,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잉태하기에; 바다를 만나러 가는 어부의 볼도, 새로운 하루를 만나러 가는 여행자의 마음도 발그스름하다.

체온이 높아 더위를 많이 타는 윗니는 오늘도 침구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나 보다. 그녀의 다리를 휘감고 있는 이불로부터 구출해주었더니 잠에서 깨어 검은 두 눈동자로 올려다본다. 그렇게 그녀와의 눈맞춤으로 아침 인사를 대신해본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깟바는 어느새 내 것이 되어있었다. 카르스트 섬에 부딪혀 잘게 부서진 파도가 어지럽게 얽혀 있는 항구. 통통배의 간드러지는 모터 소리. 코끝이 시릴만큼 찬 바닷바람에 실린 바다의 향기. 그리고 어느샌가 곁에 다가와 품에 안겨있는 윗니의 체온. 이 순간을 기억속에 가두어 재생과 되감기를 반복하면 카세트 테잎처럼 늘어나 있겠지. 닳고 잊혀져 더이상 내 것이 아닐때, 다시 이곳에 오리라 다짐해 본다.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해 졌을때. 우린 누군가에게 물들여져 있는게 아닐까. 윗니의 식습관을 닮아가고 있다.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던 난 어느새 공복이란 단어를 들먹이며 발목에 매달리려는 아침잠을 내쫓는다. 이제는 당연해진, 1인 1.5인분이란 공식을 준수하며 기름진 튀김과 볶음밥 그리고 바닷물보다 짠 감사수프를 입에 욱여넣는다. 별점을 주기엔 너무나 평범한 맛이지만, 허기가 찾아오면 안면근육 제어 능력을 상실하는 윗니가 미소짓고 있었기에. 일단 반은 성공이다.




예정된 버스 픽업 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있어 환전도 할 겸 마을을 둘러 보기로 한다. 물어물어 찾아간 은행에서는 고객이 아니면 환전을 해줄 수 없단다. 곤란한 표정을 짓자 은행 직원은 금은방에서 할 수 있을거라는 귀띔을 해준다. 서둘러 마을 반대편에 있다는 금은방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도보로 10분정도 걸어 도착한 골목에 자리잡고 있었다. 통유리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빛이바랜 장신들이 정신없이 진열되어 있다.

보자하니 솔방울만한 금가락지로 치장한 아저씨가 사장님 같다. 그와 언어적인 소통은 불가능할거라 생각되어 지폐를 들어 보이니 계산기를 꺼내든다. 당장 사용 할 10만원만 환전 하려고 했는데 금은방 사장님이 계산기를 뚜드려 제시한 환율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다. 베트남 어딜가도 이런 환전 우대는 없을거라며 남은 경비를 모두 바꿨다. 금은방 사장님도 이윤을 남기지 않는 장사는 하지 않을테니 수수료와 거품이 빠진 환율인가 싶다. 어찌되었건 이득이다.



쓸 수 있는 화폐가 생기니 지름신이 찾아온다. 근처 시장을 둘러보기로 한다. 역시 사람은 지갑이 두둑해야 마음에 여유도 생긴다. 게다가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다. 타프로 엮어진 천막이 하늘을 가린, 어둑한 골목으로 빨려들어간다.

별같이 빛나는 백열전구. 산처럼 쌓여있는 작물들과 굽은 허리춤을 잡고 뒤뚱거리는 상인들. 어렸을 적 엄마 바지춤에 매달려 곁눈질로 구경했던 시장의 모습을 빼닮았다. 그땐 상인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무섭게만 느껴졌었다. 피로 벌겋게 물든 고무장갑으로 볼을 꼬집던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싫었고, 약초 냄새와 녹용 냄새로 가득하던 한약집 아저씨가 쥐여주던 누룽지맛 사탕도 싫었다. 그때는 멀끔하고 화려한 백화점이 좋았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사람과 삶의 냄새로, 그 고약한 냄새로 가득한 시장이 좋다. 시장바닥에 깔린 신문지 위에서 흙과 먼지에 범벅된 채소들도, 오래동안 진열되어 멍든 사과도, 때 묻었지만 사람의 그리고 삶의 냄새가 배어 있기에 자꾸 찾게 되는 것 같다.

여행 중에 만나는 시장은 익숙하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정겹다. 입구부터 길게 줄을 선 빨갛고 파란 대야에는 눈도 더 크고, 발도 두 개 더 달린듯한 이름모를 수산물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수산물 코너를 지나치자 건조된 도마뱀과 베트콩 전투복, 그리고 농 모자가 순서 없이 매달린 잡화점이 나타났다.

관심을 갖는 나에게 이것저것 소개를 해주려는 꼬마 아이가 귀엽다. 장사하는 엄마의 어깨너머로 배웠는지 호갱님을 잡으려는 말솜씨가 화려하다. 한동안 아이쇼핑만 하다 단내에 이끌려 먹거리 골목에 들어섰다. 호떡과 꽈배기 비슷한 걸 파는 아주머니들이 이리오라며 손짓을 해댄다. 차마 손사래를 칠 수 없어, 웃음으로 거절하였다.


[누...눈을 떠..윗니야]

9시 반에 픽업오겠다는 버스. 정말 1분의 오차도 없이 숙소 앞에 나타났다. 긴장되었다. 깟바로 오는길에 호앙롱 버스회사한테 호되게 당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닌빈으로 연결해주는 버스회사는 작은 개인회사였다.




배로 두시간 정도 이동하여, 작은 관광버스로 갈아탔다. 대형버스 일줄 알았는데, 확실히 닌빈으로 향하는 여행자가 흔치 않은지 20인승 미니버스가 대절되었다. 어제밤 푹 자서 피곤하지 않다던 윗니. 창밖 풍경도 구경하고 대화도 나누자던 그녀는 차창 너머로 양떼를 보았는지 폭풍기절. 결국 닌빈으로 가는 네시간 동안 그녀의 어깨베개와 침받이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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