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Madrid||Ep.7 위대(偉大)하고 위대(胃大)한 마드리드 길.

Camino de Madrid

Episode Seven


0 7. 0 8. 2 0 1 6









여기다 싶어 둘러보는 곳마다 구름처럼 새하얀 화살표만 있을뿐, 카미노 심볼과 손잡고 출가 했는지 노오란색 화살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이도 길이 넓어진다. 좁혀오던 두려움도 확보된 시야만큼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지평선에 누워있는 산 능선. 저 너머 어딘가에 세고비야가 있겠지.



산 기슭으로 길이 기울기 시작하더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돌 무더기에 노란 화살표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잠시 후 카미노 심볼인 조개 문양이 새겨진 이정표가 눈앞에 나타났다. 한참 나태해졌던 허벅지에 힘이 들어간다. 세르세디야를 향해 못다한 의지에도 불을 지펴본다.




카미노 이정표를 만나고 얼마 가지 않아 세르세디야가 적혀있는 쓰레기통을 발견. 반가운 나머지 함께 셀카를 찍어본다. 참나무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래됬다는 마을 이름, 세르세디야. 그리고 이곳의 지형을 형상화 한 문장(紋章). 두 산이 품은 참나무가 구름위로 솟아 있는 모습. 자연만을 문장에 담은 세르세디야의 모습은 그만큼 자연의 것일까?


마을로 들어서니 눈밟듯 사각거리던 흙길은 둔탁한 시멘트로 바뀌고, 바람따라 움직이던 그림자는 건물의 것이 되어버렸다. 산자락에 안겨 나무 사이에 숨어있을 것만 같던 세르세디야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두 산이 빚어낸 협곡을 중심으로 데칼코마니 처럼 펼쳐진 세르세디야. 마을의 척추같은 큰 길을 따라 동에서 서로 마을을 가로질렀다.




계획도시인지 정갈한 마을. 옷에 튄 김치찌개 국물같이 이질감있는 내 모습에 마을 주민들의 고개가 돌아간다. 멎쩍어 흔들어 보이는 손인사에 양손을 흔들어 보이는 마을 주민들. 이방인을 반기는 그들의 따뜻함에 경직되어 있는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항상 끼니 걱정이 먼저인 내 눈에 슈퍼마켓이 들어왔다. 유혹하듯 길게 뻗어있는 가게를 지나치며 수많은 식재료를 머리에 떠올리지만. 숙소를 찾는게 급선무 이기에 마을 중심부에 있다는 인포센터로 직행하였다.


▲사진출처: Ayuntamiento de Cercedilla 공식 페이스북.

시계탑이 위치한 마을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 경찰서, 박물관 그리고 인포센터가 나란히 위치해있었다. 역시나 혹시나 당연하듯 닫여있는 인포센터를 지나 경찰서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지로 착각해 내쫒을까싶어, 경찰서에 발을 들이기 전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해 본다. 얼굴에 맺힌 땀고 모자를 벗어 공손한 자세로 입장. 발을 반 발자국 들였는데 나가라는 손가락질에 바로 퇴장당했다. 문을 지키던 경찰이 뒤를 따라나와 미간에 힘을 준다. 용건이 뭐냐는 취조같은 물음에 알베르게를 찾고 있다고 하소연해 본다. 가방에 달린 조개를 훑어 보더니 웃어보이던 젊은 경찰관은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과함께 경찰서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문짝만한 마을 지도를 가지고 나오더니 알베르게 위치를 성심성의것 일러준다. 2km정도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멀다!"라고 소리질러 버렸다. 경찰관이 바지춤에 걸려있는 열쇠고리를 만지작 거리더니 "태워줄까?" 라고 물어온다. 마음은 너무 고맙지만 마을 중심부에서 2km나 되는 거리에 위치한 곳에 둥지를 틀고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부턴가 (아마 어제부터) 난 혼자가 편해졌다. 하루종일 외로운 길을 걷고난 후 조용한 침실에서 아무생각 없이 누워 빈둥거리는게 좋아졌다.


"어짜피 가는길인데. 정말 싫어?", 그의 되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휙! 뒤돌아선다. 금세 경찰서 건물의 그늘 속으로 사라진 그의 등에 대고 늦게나마 "그라시아스"를 외쳐본다. 마을의 지리를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광장을 중심으로 크게 원형을 그리며 숙소를 찾아 뚜벅거려 본다. 숙박사인이 있는곳은 죄다 들어가 빈방의 여부를 물어보지만 다들 한결같이 고개를 절레 절레. 그리고 하나같이 친절하게 다른 곳을 소개해 준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광장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음식점을 겸하고 있는 오스탈 라 마야(Hostal la maya)에 발걸음이 멈춰섰다. 따로 리셉션이 없어 보여 와인병을 정리하고 있던 종업원에게 빈 방이 있냐고 물어보자 잠시만 기다리란다. 주방에 목청것 소리를 지르니 같은 성량의 답변이 들려온다, "Si!" 다행이도 방은 많이 있다며 키를 쥐어준다. 알아서 둘러보고 결정하라는 말과함께 주방으로 사라지는 종업원. 방값도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다짜고짜 방을 구경하란다. 쿨내가 진동하는걸 봐서 흥정도 가능하다 싶다. 에라모르겠다 싶어 방을 구경해본다. 넘나 푹신한 침대 두개와 티비, 소파, 그리고 욕조와 현대식 화장실까지. 게다가 아담한 프렌치 발코니까지 있어 저녁엔 방에서 와인한잔 해도 좋을 것 같다. 주방으로 향해 종업원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35유로란다. 25유로를 불렀더니 곤란하다며 싫으면 관두라는 표정. 단호함에 기가눌려 쿨하지 않은 35유로를 지불했다.


항상 '어쩔 수 없다'라는 사고방식으로 타협을 해 보지만. 이번 여행 기간의 끝자락에 놓인 내 주머니 사정이 그리 넉넉치 않다. 세고비아에서 보내게 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삼일동안 황제처럼 지내겠다는 심정으로 무거워 지려는 발걸음을 달래곤 했는데, 내 자신과 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셀카를 찍어 윗니에게 상황 보고를 마친다.

세르세디야 숙소 도착. 힘들지만 행복함.



프랑스길에서 채워나갔던 순례자 여권에 비하면 빈곤해 보이지만, 하루하루 희노애락이 세겨져 있는 마드리드 길 여권을 잠시 펼쳐본다. 사십, 아니 오십년 후에 카미노에 대한 모든 기억이 세월이란 지우개를 통해 잊혀졌을때 주름 깊은 손으로 펼쳐보게 될 이 여권. 도장을 하나 하나 더듬으면 손끝에서 마드리드 길의 추억들이 되살아 나겠지.

 


혹시나 다시 생길 물집을 예방하자는 마음으로 만자나레스의 허름한 약국의 약사가 권장한 의학용 테입을 발바닥에 붙였더랬다. 걸을땐 몰랐지만, 떼어낼때 지옥을 경험하게 될 줄은 상상도하지 못했다. 카미노에서 많은 고통을 경험했지만, 다 아물지 않은 생살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은 클라스가 남달랐다. 그리고 샤워를 할 때 뜨거운 물이 생 살을 자극해 두번째 비명을 질렀다.

빤스만 입고 침대위에 누워 검색기를 돌려본다.

'세르세디야 최고 맛집'

수많은 리뷰와 함께 올려진 음식사진을 보며 군침을 흘리지만 아쉽게도 다들 저녁에만 장사한단다. 인연이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포기가 쉬운 나. 대신 필연을 만들러 무작정 길가에 나섰다.

발 상태 때문에 걷고 싶지 않았지만, 맛난 밥을 먹을 수 있다면 100미터 달리기를 하라해도 한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뛰어버릴 나다. 마을 광장을 조금 지나 공터에 열린 장터에 관심이 가서 밥은 잠시 보류하고 둘러보기로 한다. 느릿한 걸음으로 둘러보니 수공예로 만든 잡다한 생활 아이템과 지역 주민들이 생산한 식료품들이며 와인들이 판매되고 있다. 와인 부스에서 시음하라며 코앞에 내민 와인 몇잔을 입에 털어너었다. 달달한게 넘나 맛있다. 4유로에 로제와인을 한병 구입했다. 오늘 저녁에 발코니에 서서 똥폼 잡으며 병나발 불 생각을 하니 행복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와인이 담긴 종이백을 붕붕 휘두르며 어딘가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음식점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바위에 붙은 홍합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들을 지나치다 사탕가게에서 눈걸음이 멈춰섰다. 지역 특산품이라는 문구에 눈이 발을 멈춰세운것이다. 호갱인 줄 알고 득달같이 마케팅 전술을 걸어오는 종업원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사실 샘플 맛만 보고싶다고 하니 처음의 친절함을 1퍼센트도 잃지 않고 이것저것 먹어보라며 샘플을 권해주었다. 이곳에서만 난다는 약초로 만든 사탕은 꽃향에 가까운 단맛이 일품이었다. 정말 마음 같아선 사고 싶었지만 제일 저렴한게 10유로나 해서 독에 물새듯 최대한 자연스레 가게를 빠져나왔다.

입안 한가득 물은 사탕의 단맛에 취해 마을을 걷다보니 아까 지나쳤던 슈퍼마켓 ("dia" "하루"라는 뜻)에 도달했다. 마트 안으로 들어서니 이마트같이 내장까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를 반겨준다. 생각없이 식료품을 구경하고 있는데 내일 일정에 대한 걱정이 든다. 내일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식량을 단디 챙기지 않으면 지옥같은 하루가 될 수도 있다. 장바구니를 챙겨와 이것저것 담아 본다. 





그러다 맞닥드린 "LA GULA"라는 식재료. 부르고스에서 버섯인줄 알고 먹었던 식재료는 알고보니 라 굴라라는 새끼 장어였다. 육류가 가진 단백질의 맛이나 향도 없었을 뿐더러, 식감이 버섯과 너무 비슷해 감쪽같이 속았었다. 포장되어 있는 모습이 조금 혐오 스럽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난 한때 이색적인 고기에 맛을 들여 캥거루, 악어 그리고 거북이 고기를 사용한 요리들을 만들어 먹어 보았을 정도로 비위가 강하다. 



양손가득 물건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온 난 음식점 찾는걸 쿨하게 포기하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로 한다. 내일 먹을 아침과 점심용 샌드위치 네개를 미리 만들어 놓고 남은 식빵 10개로 샌드위치 다섯개를 만들어 먹었다. 평소엔 두개만 먹어도 배부르고, 질릴만도 한데 다섯개를 받아들이는 위가 대단하다.정말 위대(偉大)하고 위대(胃大)한 순간이었다.

식후 10분동안 걷는 철칙을 지키는 나. 그런내가 샌드위치 다섯개의 포만감을 이기지 못해 침대에 발라당 누워버렸다. 앙상한 몸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불쌍할만큼 앙상한 갈비뼈, 식후라 그런지 배만 볼록나온 모습이 꼭 30대 아재같다. 아재가 된 기념으로 뉘우스를 시청하려 채널을 돌리는데 다들 브렉싯에 대해 침튀겨 토론중이었다. 아직도 영국 여왕을 국왕으로 섬기는 캐나다의 시민으로서 영국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지만 이참에 캐나다에 투자가 쏟아져 경제나 좀 나아졌으면 하는 말도 안되는 바램을 가져본다. 리포터가 얼마나 침튀기며 보도하던지 보고있는 내가 다 목이 탄다. 장터에서 구매한 로제와인을 따서 병째로 들이켰다. 달달한게 목넘김이 아주 좋다. 결국 입에 다 털어넣고 빈 병과 함께 침대위에 나란히 누웠다. 늦게 내려앉은 어둠이 병안에 담겼다. 이상하리만큼 붉은 와인빛을 가진 세르세디야의 저녁. 순례자의 걱정을 세르세디야 마을 어딘가에서 잊어버린 것 같다. 건물 1층에 있는 식당의 테라스에서 새벽 한시까지 떠들던 아재들의 수다를 자장가삼아 꿈나라로 향했다.

Comments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