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삼국의 합작, 호이안의 까오러우.


도착했다는 안내방송도 없던 열차는 플랫폼과 맞닿음과 동시에 멈춰섰다. 종착역인가 보다. 양손에 봇짐이 가득한 현지인들은 이미 열차내 복도를 가득메워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다. 반대로 느릿하게 배낭을 짊어멘 윗니와 난 그들을 선두로 여유롭게 하차하였다. 플랫폼으로 쏟아져 내린 승객들, 일제히 출구로 바삐 움직인다. 그 치열한 대열에 몸뚱아리를 맡겨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윗니와 나도 역 밖으로 빠져나왔다. 





탁한 하늘과 대기층을 가득 메운, 매연이 짙은 공기. 하노이와 다른점을 찾아보기 힘든 다낭과의 첫 대면이었다. 열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배낭에서 꺼내어 손에 쥐고있던 마스크를 쓰고 뿌연 도심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숨막힐 만큼 빼곡히 들어선 업소와 동일한 밀도로 도로를 가득메운 차들. 베트남 여행에 오르기전 읽었던 타 블로거들의 여행기에 자주 거론 되던 다낭이었지만, 북적이는 휴양지의 면모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정되었던대로 다낭을 거쳐 호이안을 오늘의 여행지로 맞이하기 위해 이동한다.

다낭 시내를 도보로 잠깐이나마 구경하려던 계획이 무산이 되었다, 예정보다 다낭역에 늦게 도착한 기차 때문이었다. 서둘러 호이안으로 향하는 버스를 찾아야한다. 

다낭 도심 어딘가에 있다는 핑크 성당. 그 앞에서 출발한다는 호이안행 로컬버스를 잡아 타려고 발걸음을 바삐하고 있는데 눈치없는 배 신호가 울려온다. 둘이서 새벽에 죽 한그릇으로 공복을 달랬더니 걷는 속도도 영 나질 않고, 오랜만에 배낭을 짊어 매고 걸었더니 발도 아프다.



지체할 시간이 넉넉치 않았지만 위에서 보내는 신호는 인간의 모든 욕구보다 위대하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선 간편한 먹거리를 찾아야 했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 로ttㅔ리아를 발견했다. 휴양지나 대도시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패스트푸드점, 그것도 로떼리아가 눈앞에 나타나서 휴양도시인 다낭에게, 땡큐. 역시 편견의 잣대는 짧다. 다낭은 로떼리아가 있던 곳으로 기억 한켠에 각인되겠다.


매장에 들어서니 티끌하나 없는 대리석과 삼성 휘센과 모던하고 시크한 가구들로 가득하다. 각잡힌 유니폼 사이로 쏟아지는 직원들의 눈빛을 의식하며 매장 제일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와이파이나 쓰려는 배낭족으로 볼 까 두려워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당당히 주문대에 섰다.

익숙한 메뉴들 사이로 동남아의 향이 물씬나는 치밥(치킨+밥)과 각종 볶음밥들이 눈에띄었다. 맛이 어떨까 궁금했지만, 호기심은 고양이 뿐만 아니라 그 날의 무드 킬러가 될 걸 알기에, 무난한 메뉴를 택하기로한다.

 주문 받는 종업원이 "노 잉글리시"를 외치면서 선수를 친다. 세계 공통어인 텔레파시 손짓발짓을 사용하여 주문을 했다. OK사인을 받기까지 꽤 많은 수신호가 오가야했는데 정작 계산서를 내민 직원은 영어로 가격을 알려줬다... (영어 못한다며...)


매장안에는 우리 둘을 제외하곤 단 세 명의 손님뿐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음식이 나오기까지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했다. 



한참을 기다려 받아온 감자튀김은 어딜 쏘다니다 비를 맞고 왔는지 눅눅했고, 콜라도 비에 홀딱 젖었는지 맛이 밋밋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그럴거라며 서로를 달래던 우린 주문한 버거가 나오자 눈물 젖은 버거를 먹어야했다.



비쥬얼 만큼 별로인 버거. 하나를 다 주기엔 아까웠는지 일반 고기 패티를 가위로 싹둑 잘라 넣었고, 치킨 패티는 말 그대로 뼈 없는 닭 부위를 튀겨낸 것이었다. 비 맞은 중 마냥 궁시렁 거리며 감자 튀김을 집어 먹고 있는데 문득 시간이 궁금하다. 손목 시계를 확인하고선 기겁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12분 뒤에 버스와! 윗니야 뛰어!"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가 5시 30분에 있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롯데리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한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택시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돈 몇푼 아껴보겠다며 로컬버스를 이용 하려던 계획이 무산될 상황. 애시당초 버스를 타치 않을거면 롯데리아 가지도 않았을 텐데... 

후회와 짜증이 한데 섞여 머리가 복잡한채로 구글맵이 가리키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해 냅다 뛰었다. 



정확히 5시 29분에 정류장에 도착.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이 한명도 없으니 혹시나 이미 놓쳐 버린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더 큰 문제는, 구글맵에 표기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이게 맞는 버스 정류장인지, 그리고 (호이안으로 향하는)맞는 방향의 정류장 알 수가 없다.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 사장님을 붙잡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해 보지만, 고개만 끄덕일뿐 질문 자체를 알아들었는지 조차 알 수가 없다.


갓길에 서성이며 버스가 보이나 주시하였지만 보이는건 날 한낱 호구로 보는 택시기사와 그들의 악마같은 손 짓 뿐이었다. 윗니에게 10분만 더 기다려 보자며 계속해서 길을 주시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사실 버스를 기다리겠다는 마음보다, 다음 해야할 선택들을 머릿속에 배열하고 있었다.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적어도 윗니에게는... 쓸데없는 자존심이란걸 알지만 말이다.

똥줄타는 10분이 지나자 어느 낡은 버스가 후광을 밝히며 코너를 돌아 내 발치 앞에 멈춰섰다. 열린 문을 통해 무조건 타라는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웨이러 미닛을" 시전 한 후, "호이안? 호이안?" 이라고 물어보자 그렇다며 다시한번 타라는 손짓을 한다.



버스 안으로 들어선다. 어둠속에서도 윤곽이 들어나는 짙은 주름을 가진 할머니들과 버스 통로에 가득 채워진 봇짐들로 가득하다. 예측하건데, 호이안 야시장에서 밤장사를 하러 가시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버스 뒷편에 두 자리가 비어있어 봇짐들 사이에 배낭을 던져놓고선 윗니와 나란히 앉는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난다. 따지고보면 그렇게 심각한 상황도 아니였다. 편하게 택시타고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으면 좋았을텐데. 불안해 하는 뒷모습만 보여 부끄럽기까지 하다. 

즉흥적이고 모험적이라 변수가 많은 여행을 즐겨하지만, 그런 혼돈의 외줄타기같은 내러티브 속에도 나만의 신념과 가치관이 존재한다는 걸 윗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굉장히 계획적이고 꼼꼼한 유형의 여행을 즐겨하는 윗니에게 난 조금더 자율적인 여행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더랬다. 하지만, 깟바로 가는 날 당했던 사기도 그렇고 이렇게 작은 일에도 쉽게 멘탈이 흔들리는 날 보며 윗니도 얼마나 불안해하고 불편했을까?


멋쩍은 웃음으로 "다행이다"라 외치는 나에게 윗니는 내가 복이많아 그런거라며 격려를 해 주었다. 생각이 많아져 호이안으로 향하는 두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창 밖만 바라보며 머릿속의 대화에 집중하였다.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을 열심히 달리던 버스는 물 웅덩이가 가득한 한적한 시골 버스 터미널에 멈춰섰다. 내릴때가 되어서야 버스비를 요구하는 기사 아저씨. 사전에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단지 우리가 외국인이란 이유로 버스비를 두배로 요구하는 아저씨가 얄미웠다. 더이상의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아 요구한 돈을 건냈다.

플랫폼도 없는 진흙이 가득한 버스 터미널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역사 밖으로 빠져나왔다. 구글맵에 의지해 여행 떠나기전 사전에 예약해 두었던 숙소를 향해 걸었다. 피곤 할 법도 한데 잘 따라오는 윗니에게 응원을 해주며 열심히 걸었더니 30분 거리를 20분만에 걸어 숙소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밤새 달린 기차안에서 쪽잠을 자다말다하고 하루종일 햄버거 하나 먹은게 다 였지만, 호이안에서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밤새 이동하였기에 샤워가 간절하였지만, 굶주린 배 앞에선 눈에 뵈는게 없었다. 숙소에서 호이안 중심부까지는 2.5km 정도 된다는 사실에 좌절했지만, 숙소측에서 자전거를 무료대여해준다는 말에 환성을 질렀다.

큼지막한 소쿠리가 달린 자전거 두 대를 꺼내온 직원에게 주의사항 몇가지를 전해듣고 출발하기에 앞서 윗니에게 시범운행을 시켜보았다. 능숙하게 안장에 앉더니 거침없이 출발하는 그녀. 그래도 밤길이라 위험할 수도 있으니 조심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어둠이 집어삼킨 호이안의 밤 길을 달려본다. 

"흐아아~~~"

온종일 배낭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몸이 바람에 실리자 방언이 터졌다.

"좋다!"

뒤따라 오던 윗니가 동의하듯 환호를 지른다.



행여나 길을 잃지 않을까 노심초사 달리던 중, 형형색색의 밝은 빛으로 치장한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동시에 수많은 인파가 길을 가득 매웠다. 저속 주행엔 미숙하다는 윗니가 자꾸만 중심을 잃고 넘어질뻔 했다. 그녀를 위해 자전거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을 계속했다.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선 아담한 상점들과 음식점에 자꾸만 눈이 갔지만 야시장도 끝물에 다다른 늦은 시간에 도착한 우린 서둘러야만 했다. 


호이안 올드타운 투어의 핵심지이자 서울의 한강 같이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투본강에 도착하여 도보 투어를 시작했다. 잔잔한 강물에 반사되어 빛고운 춤을 추는 도시를 담아보기위해 셔터를 바삐 놀렸지만, 심령사진을 방불케하는 사진만 남겼다. 여행 중 마주한 야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선 삼각대가 필수지만, 다른 짐 욕심때문에 삼각대 녀석은 옷장 구석에 박혀 수년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투본강 남쪽에 위치한 야시장은 혹시나 했던 내 예측과 쎄쎄쎄 하듯, 역시나 메이드인 차이나인 자잘한 기념품들로만 가득했다.




기념할 만한 것들은 찾아 보다가 (그나마) 실용성 있어 보이는 입체 엽서를 구매하기로 했다. 친구들에게 보낸다며 열댓개를 쥐어 든 윗니. 부르는게 값인 야시장이니 조금 깎아보자며 흥정을 시도해 본다. 눈매가 장군감인 상인 아주머니는 능글맞은 내 애교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러 어림반품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어댄다. 결국 윗니의 집요한 흥정 끝에 여섯개 가격에 열개를 구입할 수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면 눈여겨 보았을게 많았겠지만 밥을 먹겠다는 의지가 여행에 대한 열정의 불씨를 금방 꺼트려 버렸다. 종일 먹은 거라곤 둘이서 죽 한 그릇과 버스를 잡아 타느라 반 밖에 먹지 못한 햄버거가 전부였기에...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있던 맛집 몇 곳을 찾아갔지만 모두 영업이 끝났다며 우리의 간절한 눈빛엔 차가운 등쌀만 비추었다. 비어 있는 위 상태도 위급했지만, 피곤과 졸음이 밀려와 우리 둘 사이에 오가던 말문마져 틀어 막혔다. 포기란 단어가 의지를 꺽을려는 찰 나, 투본강 저만치에서 낡은 음식점을 발견했다.

여행자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허름해 보이는 음식점. 맛집 알아보는 눈썰미가 있다고 자부심을 갇는 난, 무언가에 이끌려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기대도 잠시. 종업원이 건네 준 메뉴판을 본 순간 내 직감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서만큼 두꺼운 메뉴판 안에는 100개 넘짓한 음식 이름이 엑셀 차트마냥 빼곡히 기재되어 있었고 그 중 절반 정도는 토스트나 오믈렛이 포함된 어뭬리칸 조식 세트 메뉴 였다. 수년간 쌓아온 경험상, 어뭬리칸 조식 세트를 겸한 식당은 중간도 못가는 곳들이었다.


기껏해서 찾은 음식점이 맛집이 아닐거란 생각에 걱정이 앞섰지만, 관우가 휘둘렀을만한 거대한 중식칼을 능숙하게 휘두르고 있는 주방 아주머니의 모습을 본 순간 모든 의심은 사라졌다.

메뉴를 정독한 뒤. 무엇을 시킬까라는 고민보다, 무엇을 시키지 말아야 할까란 고민을 한 뒤, 엄선된 일곱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타 블로거들의 입담에 오르 내리던 화이트 로즈에대한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빚어한 호이안의 역사가 베어있는 음식인 까오라우의 맛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쌀로 만든 우동면에 시큼한 향이 가미해진 야키우동의 이종사촌 즈음 되는 면요리! 하루종일 배때지에 채운 음식이라곤 죽 반그릇과 눅눅해진 햄버거가 전부였던 나에게 탄수화물을 선사 할 한 그릇 말이다. 



잠시후 서빙된 까오러우의 비주얼은 굶주렸던 우리의 탄성을 자아냈다. 라멘에 올려진 차슈를 닮은 돼지고기와, 볶은감자채를 닮은 쌀면은 듣도보도 못한 모습이었다. 설에 의하면 까오라우 면의 쫄깃함은 철분 함유랑이 높은 호이안의 우물물로 반죽되어 탄력성을 높다고한다. 그 쫄깃함이, 함께 겻들여진 숙주나물의 아삭함과, 튀겨져 나온 만두피의 바삭함과 한데 어울러져 식감을 극극극대화시켰다.

먹다보다 소스에 사용된 중식의 향신료 5대장인 큐민(cumin), 정향(clove), 팔각, 계피, 생강이 들어가 중식의 맛도 강하게 어필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3국이 합심해 만들어진 요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호이안만의 명물이 아닐 수 없다.



이어 나온 화이트 로즈는 역시 기대한 만큼 실망이 컸다. (그저 만두일 뿐.) 물론, 화이트 로즈로 유명한 모닝글로리에서 먹어보지 못했지만, 만두는 만두일 뿐이다 (상해에서 먹었던 샤오롱바오 제외).



시켰던 나머지 음식들도 맛있었지만, 기억에 남을만한 특색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나 백인 여행객들에게 극찬을 받았던 베트남 나초도 안주(펍푸드)로 제 역할을 하겠다만, 소울푸드의 높은 장벽을 오를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취객들로 가득하던 음식점. 덕분에 여유로운 식사시간을 갖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쫒겨낼 줄 알았다) 힘실린 패달질을 하여 숙소로 돌아갔다. 배낭여행자에게 주어진 여유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와이파이 타임을 갖을 체력도 없이 숙소에 도착한 우린 2분샤워를 마친 후 곧바로 꿈나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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